헤세가 기다리는 문학의 공간, 치유의 공간으로의 초대,
세상의 시계가 아닌, 내 마음의 시계로 살아가는 삶을 위하여
헤르만 헤세는 첫 경험의 이름이다. 인생의 첫 사랑과 방황과 슬픔의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이름이다. 헤세의 데미안은 지금도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나는 삶의 멘토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 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 문장을 낳은『데미안』(1917)은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독일 소설로 꼽히며 더 크고 깊어진 사랑을 받고 있다. 시인, 소설가, 화가로 구도자적 삶을 살았던 헤르만 헤세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걸었던 길 위의 깨달음,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와 자연의 고요한 치유력에 대한 예찬은 매순간 점점 더 다급한 일상의 쫓김을 견디고 버텨야 하는 우리에게 지금 더욱 절실해진 메시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서재』『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의 베스트셀러로 독자들과 문학을 통한 마음여행을 함께해온 작가 정여울이 헤르만 헤세를 다시 찾아가는 특별한 여행을 떠난다.
저 : 정여울
문학평론가, 매년 섬진강 매화마을의 꽃봉오리가 막 터지기 시작하는 즈음, 나는 봄이 오는 소리를 감지한다. 하지만 늘 이런저런 일에 쫓겨 매화 축제의 절정을 놓치고 만다. 올해도 어김없이 매화가 흐드러지기 시작할 무렵,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야말로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의 벽돌로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작은 성이구나. 겉으로 보기에 내 정체성은 주로 글쓰기로 드러난다.
문학과 영화와 철학과 삶이 어우러진 정체불명의 글쓰기로 지난 10여 년간 참 바쁘게 살았다. 그러나 잘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이 듣고 더 깊이 읽어야만 한다. 내 글쓰기의 버팀목은 사실 타인의 목소리를 듣기다. 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목소리로 가늠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은 모두 외모보다는 목소리가 아름다운 이들이고, 나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이들도 모두 내가 은밀히 열광하는 목소리를 지녔다. 그들의 음색은 전문 성우처럼 울림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생과 예술에 대한 조용한 애착이 담겨 있기에 아름답다.
사실 나는 말하기가 두려워 글쓰기로 도망친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신기하게도 말하기가 좋아진다. 맹렬히 글을 쓸수록, 새로운 벗들을 만나 말하고 듣는 소중한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말하기의 쑥스러움을 피해 글쓰기라는 피난처로 은신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말하고 듣기 위해 글을 쓴다는 생각에 더욱 행복해졌다. 사랑과 혁명과 우정의 불꽃이 담긴 모든 이야기에 열광하는 내 마음을 담은 책들로는 『마음의 서재』 『시네필 다이어리』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소통』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며 《한겨레》에 내 마음 속의 도서관을 연재하고, KBS1라디오 책 읽는 밤에서 마음의 서재 코너에 출연하고 있다.
사진 : 이승원
작가. 저서 『나에겐 국경을 넘을 권리가 있다』 『저잣거리의 목 소리들』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학교의 탄생』 『사라 진 직업의 역사』 등이 있으며, 정여울 작가의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에 사 진 작업을 함께했다.